글 수 26
목사님,
유대 민족이 홍해를 건너 가나안에 도착하기 까지 40년동안 유랑하는 과정에 대해 민수기 14장 26절~35절에선 죄에대한 징계의 의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 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민수기 14:33)
그렇다고 하면, 이 40년에 대한 해석을 잘못으로 인해 받는 죄의 징계로 생각할 수 있는데요.
혹자는 '홍해를 건너는 것을 세례의 예표다. 그러므로 이 40년의 과정은 '성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라고 해석한다고 들었습니다.
'성화'의 의미는 죄사함 후의 단계로 알고 있는데요 이 해석처럼 40년의 과정을 성화의 과정으로 보면 민수기에서의 '죄에대한 징계'에 대한 해석과 모순이 일어나지 않나 해서요.
목사님은 이 40년의 과정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위 혹자의 해석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리고 추가 질문 하나 더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해 죽으시며 죄사함을 해주시는 사건의 이전 시점, 즉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구원, 즉 죄사함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같이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답변 해주실거죠~?
미리 감사합니다!!

1) 구약의 출애굽 사건과 신약의 십자가 대속 사건은 서로 연관이 있으면서도, 좀 다른 사건입니다. 흔히, 우리가 출애굽을 구원과 연결시켜 이해하려할 때에는 '구원' 또는 '구속'이라는 키워드가 연결고리가 됩니다.
하지만, 출애굽 사건의 구원은 민족구원을 말하고, 십자가의 대속에 의한 구원은 개인구원 쪽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개인구원이 먼저냐 아니면 사회구원이 먼저냐의 논쟁을 할 때도 근거가 되는 두 개의 핵심 사건입니다.
그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을 서로 의미적으로 연결시켜 해석하다보니 (이런 경우를 '신학화'한다고 말하며, 영어로는 'theologizing'한다고 말하는데...), 그 두 사건의 상관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유익이 되지만 반드시 정확하게 대응이 되지 않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즉, 하나는 민족구원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개인구원에 대응시켜서 이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애굽에서의 삶은 죄 가운데 있었던 과거의 삶, 즉 옛사람의 모습을 말하고, 출애굽은 '칭의'(Justification)로 대응이 되며, 광야 40년은 '성화'의 과정(The Process of Sanctification), 그리고 가나안 입성은 영원한 세계로의 진입을 말하는 '영화'(Glorification)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위의 세 용어들은 신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신학적 용어들이지, 성경에 나와 있는 단어들은 아닙니다. 즉, 신학적 용어란 성경에 흐르는 내용에 대한 학자들의 신학적 해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나, 때로는 우리의 이해를 제한시키는 약점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2) 자, 이러한 전제하에서, 위의 첫째 질문에 대해 좀 더 직접적인 답변을 드린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성경의 민수기는 "불평의 책"(The book of murmuring)이란 별명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인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의 "너희의 반역한 죄"라고 하는 것은 출애굽 이후의 하나님을 향해 '반역한 죄'를 말하는 것으로, 굳이 위의 1)번에서 설명한 바로 말하자면 출애굽한 이후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죄는 이스라엘의 민족적(또는 신앙공동체적) 죄입니다. 그것을 개인구원 쪽에다 맞춰서 설명하자면, 우리는 "예수믿고 구원받은" 후에도 죄를 짓습니다. 예수믿고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를 짓지만,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가 '의롭다고 여김받은 것'이지 우리가 온전히 완벽해진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도 죄된 본성(풍요로운 삶에서는 옛사람)이 남아 있으므로 때때로 죄를 짓습니다.
따라서 때로눈 그 죄들에 대한 징계를 받기도 합니다. 비록, 소위 "출애굽 1세대"들이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그들이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한 것이 곧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즉, 출애굽 이후 (구원받은 이후)에 지은 죄에 대한 징계로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한 것이지, 결코 구원을 상실했다거나, 처음부터 구원을 받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가나안 입성과 천국 입성을 우리가 의미적으로는 대응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는 있으나 정확히 논리적으로 대응시켜서 이해하려하면 이러한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다. 비록, 이민 1세대들은 가나안에 못들어갔지만, 이민 2세대, 3세대들은 들어갔거든요. 그러므로, 이 경우는 신앙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지, 개인 구원에 꼭 매치시켜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3) 아울러서, 참고로 부언하자면, 구원이라는 말 자체가 협의의 구원이 있고 광의의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믿고 구원받았다"고 할 때의 구원은 협의의 구원(즉 칭의)를 말합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구원 속에는 칭의와 성화와 영화가 다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도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너희"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칭의)을 받은 사람들이거든요.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한 것은 바로 성화의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받았으나, 또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처음의 구원(칭의)과 두번째 구원(성화)은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어 자체 보다는 때로 컨텍스트로 부터 해석되어지는 의미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경진 자매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구약시대 때의 구원, 즉 죄사함 받는 것(신약적 의미로는 칭의)은 제사제도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때의 구원은 하나님 앞에서 내 죄 대신에 짐승의 피를 흘리므로(좀 심하게 표현하면, 생명이 죄 때문에 사형당하므로) 제사를 드리고, 그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속죄받는 과정을 통해서 구원(또는 구속)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대속죄일이라든지, 유월절 등의 절기가 있어서 신앙공동체인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속죄의 과정르 밞았던 것이고, 또 그 밖에 개인적으로 제사를 드리므로 지속적으로 죄의 문제를 제사를 통해 해결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제사제도를 통폐합하셔서 십자가라는 제단을 만드신 것이고, 그 수많은 짐승제사를 통폐합하셔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물을 드리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위 신약시대라고 말하는 우리들의 구속의 과정인 칭의가 결코 구약시대의 제사제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경진 자매의 전화를 받고는 두서없이 시작한 답변이 좀 장황하게 되었으나, 많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혹, 그래도 미흡하다 여기면, 영국에서 돌아와서 보충 질문을 해주세요. 아니면, 이곳에 새로 질문을 실으시던지 하면 될 것입니다.
경진 자매의 질문이 다른 많은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Happy New Year in Christ!